“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
첫 만남에 나오는 단골질문 중 하나가 바로 ‘어떤 일을 하고 있냐‘는 질문이다.
낯선 사람을 알아갈 때 이름, 나이, 거주지, 그리고 직업.
이런 것들을 물어보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에 대해서 유추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그 중 직업에 대한 정보는 그것만으로도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는지,
씀씀이는 어떤지 등이 예상이 가기 마련이다.
‘S전자 다니고 있습니다.’ 이 한마디가 강력한 자기 소개 수단이자, 사회에서 자기의 위치가 어느정도인지 과시하는 수단이 된다.
잘나가는 직장에 다닌 다는 것은 그만큼 엘리트라는 뜻이 되며,
아마도 공부를 잘 했을것이고, 아마 지금은 수입이 상위권일 것이다라는 정보를 듣는이에게 전달하게 된다.
다소 편협한 시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저는 지금 파트타임으로 비영리단체에서 자막제작과 음향자문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자기소개서에 쓸법한 문체로 적은 것이다.
나름 바빠보이지만 눈치 빠른 집안 어른들은 ‘아 아직 백수구나’하는 시선과 함께 용돈을 더 주시던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
위의 글은 말 그대로 알바를 하는 작가지망생(혹은 블로거)라는 소리 밖에 안된다.
하지만 직업이 있다면 저렇게 길게 풀어 설명할 필요없이, ‘(회사명) 다니고 있습니다.’로 정리된다.

직업이 곧 사회적 위치가 되는 구조
한국사회에서는 직업에 따라 소득수준이 결정됐다.
요즘에서야 부업시장이 발달하고 많아지면서 1개의 직업에 소득을 의지하는 경우가 줄었다고 하지만,
지금도 소위 말하는 ‘사’자 직업들, 대기업 직원들은 소시민들보다 더 많은 소득을 가져가기 마련이다.
물론 그들의 업무 강도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직업이 주는 것은 소득만이 아니다.
좋은 직업, 조금 구식 얘기를 하자면 화이트 칼라 직업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들이었다.
돈을 많이 받아도 예를들어 원양어선을 타는 일처럼 육체적인 노동이 힘든 일을 사회적으로 좋은 직업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하지만,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다 데스크 업무를 선택한다.
좋은 직업을 얻는 다는 것은 소득수준 이상의 사회적 가치가 주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같은 업계 내에서도 더 크고 유명한 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의 파워가 강한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래도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직급은 같아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혹은 그 반대 상황의) 경우가 현장에서는 자주 있다.

SNS 시대, 정체성이 더 압축되는 이유
SNS계정을 만들 때면, 프로필 설정에 직업란이 있다.
곧이곧대로 적은 사람들도, 재밌게 풀어서, 혹은 대략 어떤 업계인인지 유추할 수 있는 정도만 적어 놓는 사람들이 있다.
직업은 이제 인간을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 하나의 페르소나의 역할도 하고 있다.
다른사람을 부르는 호칭도, 직급이나 역할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사장님, 선생님, 대리님, 실장님 등등…이미 직업은 우리 사회의 정체성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아니, 가끔은 그게 전부일 때도 있다. 명확한 직업이 없는 상태를 굳이 ‘백수’라고 이름지어 비하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우리 사회는 이미 성과 중심의 사회가 되었다.
직업을 가진 다는 것도 삶에서 어떤 ‘성과’를 이룬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강조해서 우대하거나 비하하는 것이다.
너무 비약적인 일반론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내가 강조하거 싶은건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있는지의 여부다. 실제로 나는 ‘비하’하는 사람은 많이 보진 못했지만,
대다수는 좋은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우대’하거나 선망의 눈빛을 보내는것은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들은 한 사람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기에 충분하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 그것에 직업만한 좋은 타이틀도 없는 것이다.
비교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땔래야 땔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과 중심 사회라는 것은 결국 그 기준을 어떤 일을 해냈는지 못했는지를 넘어
‘남들보다 잘 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해야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이어져 온 비교가 성인이되고 사회인이 된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없어지는 습관은 아닌 것이다.

왜 20대는 더 혼란을 느끼는가
문제는 20대들은 아직 직업이 없는 경우가 많고, 다른 나이대보다도 또래들과 격차를 심하게 느끼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회에 처음으로 벽을 느끼고 현실을 자각하는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에서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기 마련이다.
직업을 가진다고 해서 이러한 고민들이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
일을 하면 할 수록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자신이 원했던 삶과는 멀어지고 사회라는 시스템에 녹아들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나’라는 존재는 점점 없어지고 사회에서의 역할인 ‘직업’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시기가 20대인 것이다.
정체성이라는 것이 딱 정해져 있는것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사회에서는 내 이름과 성격보다 내 직책과 역할을 부르며 교류하는 것이 당연하고,
가끔은 인격체로 대해지기 보다 시스템의 부품처럼 대해질 때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직업과 ‘나’를 분리해볼 수 있을까
직업은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역할이다.
역할이라는 말은 우리가 먼저 존재하고 나서, 부여받는 것이 역할인 것이다.
직업이 우리를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취업시장이 얼어붙고, 고물가 시대가 도래하면서 무엇보다 직업이 중요해졌지만,
그것은 우리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에 따라 중요도가 달라진다.
나는 개인의 행복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직업’을 가지는지 보다 ‘무엇을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일을 준비하고 있다.
직업이라는 역할은 변할 수 있다.
이직하게 되면 바뀌는 것이 역할이다. 연차가 쌓이면 직장에서 나의 역할도 바뀐다.
바뀌지 않는 것은 그것을 행하는 주체인 ‘나’이다.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려운 것은 그 모습 역시 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인정하고 넘어가야 한다.
20대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만약 나와 직업 사이의 정체성의 고민이 생긴다면,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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