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잘 사는 삶’이 더 명확했다
잘 사는 삶이라는건, 사람마다 기준이야 다르겠지만 보통 의식주가 안정적이고, 직장이 있고, 가정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물론 그 안에서 또 기준은 나뉘겠지만,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먹고 살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수익이 보장되고, 몸 뉘일 곳이 있고,
기왕이면 결혼까지 해서 가정을 책임질 능력이 있다면 내부 사정은 어떻든지 잘 산다고 할 수 있는 조건은 충족했다.
이렇듯 잘 사는 기준이 사회적으로 공유되어 있었다.
어찌보면 이게 당연한 삶의 기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위의 조건을 다 충족해도,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기 어려운 것 같다.

기준이 사라진 시대
과거와 달리 지금은 다양한 삶의 방식이 등장했다.
비혼주의가 늘어났고, 능력이 되어도 결혼이 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수익의 방식도 다양해졌다. 꼭 기업에 취업하지 않아도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들이 많아졌고,
사람들이 그러한 정보에 한층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프리랜서'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전처럼 직장에 있는 것보다 더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이전의 방식이 선호되지 않는건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취업을 위해 아까운 청춘을 쏟아가면서 준비하고 있다.
다만, 이제는 선택지가 많아지고 '사회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에서 '나는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질문이 바뀌었다.
선택은 많아졌지만 기준은 사라졌다
선택지가 많아졌지만, 무엇이 잘 사는 것이라는 기준은 사라졌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기준이 모호해졌다. 예전에는 객관적이고 통계적인 수치를 예를 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의 행복이 더 중요시 해지면서, 주관적인 기준이 '잘 산다'의 조건을 충족시킨다.
그래서 오히려 20대 청년들은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려워 한다.
그 질문에 답을 하려면, 우선 내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는지, 원하는 기업에 취업을 성공했는지,
그렇게 원하는 곳에 가서는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등, 주관적인 기준에 일일이 대입해봐야 내가 잘 살고 있는건지 판단이 선다.
하지만 실제로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되겠는가.
원하는 곳에 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이 꿈꾸던 것과 같은지는 또 모르는 일이다.

비교가 기준을 대신하게 된 이유
이런 세상에서 나의 명확한 기준이 없다면, 자연스럽게 비슷한 시기의 남들과 비교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또래들은 대부분 나보다 잘 살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어떤 친구들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고, 원하는 직장에 들어간 친구들도 보인다.
현재의 삶이 불만족스러운 내 기준에, 그들은 '잘 살고'있는 것 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들이 잘사는지, 아니면 그들도 불만 많은 삶을 살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우리는 사실 그들이 잘사는지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현재의 삶이 불만족스럽다.'라고 느끼는 현대 사회다.
SNS등을 통한 비교 의식은 그것을 재확인시켜주는 장치다.

우리는 무엇으로 잘 살고 있다고 느끼는가
그럼 어떤 삶이 우리의 삶을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일까?
안정적인 삶이란건 무엇일까? 우선, 경제적 자유와 관계적 자유가 필수일 것이다.
관계적 자유란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안정적인 관계형성이 이뤄진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자유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기준이다.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건, 자기 통제다.
사람이 욕망에 따라 살아가다보면 길을 잃는다.
어디가 적정선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되고, 그런 삶에서 '만족'이란 존재하지 못한다.
잘 산다는건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상태와 아무 관계가 없이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물론 어느정도 사회적 기준은 맞춰야 한다.
의식주 아무 것도 해결이 안된 상태에서 자신은 자기 삶에 만족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개인화된 삶의 방식이 트렌드라고 해서, 모든 사회적 판단의 기준을 주관적으로 바꾼다는 것은 아니다.
잘 살고 있니? 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질문자를 설득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하든, 자기 자신까지 속이면 안된다.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어느정도 솔직해질 필요도 있어보인다.
남들이 말하는 잘 산다의 굴레에서 벗어나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지향해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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