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은 원래 어려운 것이었을까
솔직함은 항상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다.
요즘에도 정직에 대해 가르칠 때 사용하는 예화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린 시절 정직함으로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을 조지 워싱턴의 이야기로 배워왔다.
그는 도끼날이 잘 드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체리나무를 잘라버린다.
그런데 그 나무는 그의 아버지가 아끼는 나무였고, 아버지는 누가 그랬는지 범인을 찾았다.
그러자 워싱턴은 벌을 받을 수 있음에도 솔직하게 고백을 했고,
그의 아버지는 그 정직함을 높이사 따로 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이렇듯 솔직함, 정직함은 항상 그 대가를 요구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벌을 받을 각오를 해야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하얀 거짓말이라고 남을 배려하기 위해 거짓을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진실을 얘기해야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듣는 사람에게 미움받을 각오를 하고서도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말이 남는 시대
사실 남에게 미움받는 정도야 대화로 풀 수도 있고,
어물쩍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통의 인간관계에서 해당되는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내 말 하나로 꼬투리를 잡히는 경우도 많고,
솔직함이 미덕이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는 양심에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 개인에게, 가끔은 내가 속한 그룹에 불이익으로 다가올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다.
이전처럼 구전으로 전해지는 환경이 아니라 우리는 디지털 환경에서 살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대화가 기록되고 캡쳐되서 널리 퍼질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조심히 행동하고 말을 한다. 내부사정은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채용사이트의 익명 게시판을 보면 회사명까지는 공개가 되는데,
그런 글들만 모아서 영상 컨텐츠로 삼는 유튜브도 있다.
그냥 기록으로만 남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텐데,
내가 한 발언이 내 발목을 잡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평가와 해석이 강화된 사회
우리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고 그를 판단한다.
개인적인 교류를 가지는 것은 사회에서는 드문 이야기다.
주로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깊게 사귀기보다, 그 사람이 내 동료로써 자격이 있는지, 내게 유익한지 판단한다.
내가 SNS에 올린 말이, 회사내 동료들과 회식자리에서 한 말들이 그 자료가 된다.
그래서 솔직하게 내 생각을 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내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반응이 예상되지 않는다.
그리고 한번 뱉은 말은 꼬리표처럼 나에게 달라붙는다.
그렇게 신중하게 말과 행동을 고르다 보면, 개인의 진심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그렇게 페르소나를 하나씩 만들어가면서 살아가는게 현대사회의 모습인거 같다.

솔직함의 비용이 높아진 이유
솔직함 보다 침묵이 미덕이 되는 사회에서, 내가 느끼는데로, 아는대로 말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초년생이라면 그냥 지를수도 있겠지만,
그 발언의 여파를 아는 사람이라면 더 조심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솔직하게 이야기 해줬을 뿐인데 마치 이간질 한 것처럼 사람의 관계가 망가질 수도 있다.
나는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인데 사실 내 생각이 중요한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나는 솔직하게 보고 들은 것을 말했는데 어느 순간 내부고발자가 되어있을 수도 있다.
보통의 인간관계에서 솔직함은 좋은 성질이지만,
사회에서는 리턴보다 리스크가 큰 성향으로 여겨진다.

솔직하지 않으면 관계는 어떻게 될까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사실을 축소하고 왜곡하는 일은 빈번이 일어난다.
그것이 선의든, 악의든 타인을 배려하거나 나를 배려하기 위해,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의 시스템이다.
나도 이번에 프로젝트를 제안하게 되면서 예산등을 고려해서 제안서를 제출했는데,
뜻밖에도 혹시 필요한게 이게 전부냐, 일부러 축소해서 제안한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물론 그게 맞지만, 그저 현 시점에선 필요한게 그게 전부라고 선의의 거짓말을 내뱉고 말았다.
비즈니스 적인 소통에선 이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식의 소통이 늘어나면 결국 관계의 깊이는 감소하게 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침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짐을 몸소 체험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저 사람(상사)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오해가 굳어지게 된다.
우리는 솔직해지기 어려워진 것일까.
아니면 솔직함을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바꾸기 쉬운것은 그 사람의 환경이다.
우리의 환경을 한번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청년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우리가 의미있는 삶을 찾으려는 이유 (0) | 2026.03.27 |
|---|---|
| 왜 우리는 대화보다 침묵이 편해졌을까 (0) | 2026.03.25 |
| 요즘 청년에게 “잘 살고 있어”의 의미 (0) | 2026.03.24 |
| 행복은 언제부터 비교의 대상이 되었을까? (1) | 2026.03.21 |
| 우리는 왜 자유를 권리로만 생각할까 (0) | 2026.03.20 |